[여행스케치] 벼랑 끝 천년의 미소, 그리고 푸른 눈의 수행자들… 경주 '골굴사’
- golgulsatemple
- 3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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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둔황, 12개의 동굴이 빚어낸 신비
골굴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석굴사원이다. 거대한 석회암 절벽에 12개의 석굴이 층층이 뚫려 있는 모습은 마치 중국의 둔황 석굴이나 인도의 아잔타 석굴을 옮겨놓은 듯한 이국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이 독특한 풍경의 비밀은 바로 지질에 있다. 이곳의 바위는 화산재가 쌓여 굳어진 ‘응회암’이다. 단단하면서도 한편으론 무른 이 돌들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여 표면에 구멍이 숭숭 뚫린 ‘타포니(Tafoni)’현상을 보여준다. 마치 해골이나 벌집처럼 기묘하게 패인 구멍들은 자연이 빚어낸 조각품이자, 신라인들이 굴을 파고 불상을 모셔 수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 되었다.
지금은 비바람에 노출된 석굴의 모습이지만, 과거에는 훨씬 화려하고 웅장했다. 조선 중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교남명승첩’에 수록된 <골굴석굴도>를 보면, 암벽에 있는 여러 개의 굴 앞에 기와지붕을 얹은 목조 전실이 가람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숙종 때의 성리학자 정시한 선생 역시 <토함산 산중일기>에서 당시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다.
“여러 채의 목조와 가로 지어진 전실을 연결하는 회랑이 있고, 단청을 한 석굴사원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병풍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이 아름다운 목조 전실들은 조선 중후기 화재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방치되던 것을 조선 말기 박씨 일가가 상주하며 명맥을 이어왔다. 현재 골굴사는 매년 학술대회를 개최하며 12처 석굴사원의 원형 복원을 위해 힘쓰고 있다.


동해를 지키는 온화한 미소, 마애여래좌상
가파른 바윗길을 따라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때쯤, 절벽 맨 꼭대기에서 보물 제581호 ‘마애여래좌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높이가 4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다.
불상은 동해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이는 죽어서도 용이 되어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대왕의 수중릉(대왕암)을 향한 시선으로, 외세의 침략을 막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결연한 호국불교정신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얼굴만은 전쟁의 공포를 잊게 할 만큼 온화하다. 입가에 번진 옅은 미소와 가늘게 뜬 눈매는 거친 바위 질감과 대비되어 더욱 성스럽게 다가온다. 머리 뒤로는 불꽃과 구름이 피어오르는 듯한 광배가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고, 옷 주름은 규칙적인 물결무늬를 이루며 리듬감 있게 흘러내린다.
현재 불상 머리 위에는 투명한 유리 보호각이 씌워져 있다. 응회암 특유의 약한 강도 탓에 하단부가 많이 마모되었는데, 산성비와 직사광선으로부터 천 년의 미소를 지키기 위한 현대의 노력이다.
마애여래좌상을 내려오면 웅장한 법당인 대적광전을 만나게 된다.
이 대적광전이 건립되는 데에는 아주 특별한 '보살'의 공덕이 숨어 있다. 바로 진돗개 ‘동아보살’이다. 1990년 겨울에 태어나 '동아(겨울아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 개는 20년 동안 골굴사에 살며 새벽 예불부터 탑돌이까지 스님들과 함께 수행했다.
안내판의 설명에 따르면, 동아는 참배객들을 안내하고 밤에는 도량을 지키는 소임을 다했다. 특히 동아가 낳은 강아지들이 분양되며 모인 보시금 약 1,200만 원은 대적광전과 선무도 대학을 건립하는 데 귀하게 쓰였다고 한다. 축생의 몸으로 태어났으나 그 공덕은 사람 못지않았던 동아보살의 이야기는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준다.


푸른 눈의 수행자들이 골굴사를 찾는 이유
대적광전 앞마당과 범종각에서는 매일 특별한 풍경이 펼쳐진다. 승복을 입고 진지한 표정으로 무예를 수련하는 외국인들이다. 골굴사는 불교 전통 수행법인 ‘선무도(禪武道)’의 총본산으로, 전 세계에서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몰려든다.
JTBC 뉴스 등 언론에 소개된 바에 따르면, 외국인들이 교통도 불편한 이 산사를 찾는 이유는 '가장 한국적인 진짜 모습(Authentic Korea)'을 경험하고 싶어서다. 복잡한 도시와 물질문명에서 벗어나, 108배를 하고 선무도의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오롯이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기 위함이다. 땀 흘리며 몸을 움직이는 동적인 명상, 선무도를 통해 그들은 마음의 평화를 얻어간다.
경주는 단순히 과거의 유적지만 있는 곳이 아니라 지질학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곳이다. 골굴사의 타포니 지형뿐만 아니라, 인근 양남 주상절리군, 남산 화강암, 문무대왕릉 등 총 4곳이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에 속해 있다.
[출처:파이낸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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