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굴사 연혁
대적광전 앞에서 선무도 시범
오륜탑(부처님 사리탑)앞에서 선무도 수련
기림사의 사적기에 의하면, 약 1500년 전 천축국(인도)에서 건너온 광유성인 일행이 함월산 지역에 정착하면서 골굴사와 기림사를 창건하였다.
기림사는 통일신라시대 원효대사에 의해 크게 중창되어 사명이 개칭되기 전에는 임정사(林井寺)라고 하였으며,
오종수(감로수, 화정수, 명안수, 오탁수, 장군수)의 설화를 전하고 있다. 또한 불국사보다 약 200년이 먼저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골굴사는 당시 광유스님 일행들이 자국의 사원 양식을 본따서 창건한 전형적인 석굴사원이다.
응회암 지층으로 형성된 암반정상에 마애불을 조성하고 주변에 12처의 석굴을 파서 목조와가로 전실을 건조하여 법당과 요사로 사용했다.
부처님 오신날 골굴사 대적광전과 마애불의 연등 야경
여러 개의 동굴군으로 형성된 석굴사원은 우리나라에서는 이곳이 유일하지만 중국이나 인도 등지에서는 고대 석굴사원의 유적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예컨대 인도의 아잔타와 엘로라 석굴, 중국의 돈황, 운강석굴과 용문석굴이 그 대표적인 유적이라 할 수 있겠다.
골굴사는 신라시대 불교가 처음 유입될 당시 신라인들의 호국불교 정신과 정토적인 이념을 배양한 정신문화의 산실로써 경주 함월산 유역의 성지로써
유서 깊은 도량이다.
조선중기의 화가 겸재 정선의 교남명승첩에 수록된 골굴 석굴도를 보면 여러 개의 기와지붕으로 지어진 석굴의 전실이 가람을 이루고 있다.
또한 토함산 산중일기를 쓴 성리학자 정시한 선생의 기행문에도 당시 골굴암의 모습을 상세히 전해주고 있는데, “여러채의 목조와가로 지어진 전실을 연결하는 회랑이 있고 단청을 한 석굴사원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병풍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고 표기하고 있다.
불교학자들에 의하면 조선 중후기에 화재로 인해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 후 사람이 살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어 오다가 조선말기 박씨 일가가 상주하면서 개인암자로 전해왔다.
주불인 마애아미타불은 보물581호로써 동해안의 문무대왕수중릉을 향하고 있다.
관음굴, 지장굴, 약사굴, 라한굴, 신중단, 칠성단, 산신당 등의 굴법당이 있고, 특히 수천년 전부터 전래된 남근바위와 여궁의 음양조화로 득남을 기원하는
민간신앙이 간직된 설화가 유명하다.
골굴사는 12처 석굴사원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매년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